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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혼성과 원초적 쾌가 있는 우리들의 놀이터

홍지수_미술평론, 미술학박사
 
박경주는 네온, 발견된 오브제, 도자, 드로잉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전시에서 작가가 여러 재료를 뒤섞고 매칭하며 느꼈을 작업의 즐거움이 오롯이 느껴진다. 작가는 자신의 감각에 맞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미술과 자기표현의 재료로 활용하고 섞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가공품, 비가공 재료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박경주의 세계로 들어와 작가의 감각으로 재정열되고 매칭 되면, ‘박경주화’되는 생경함과 신기함, 놀라움이 있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도예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는 서구 미술사조와 문화의 유입으로 한국공예의 표현이 공예다움보다 조형, 대형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한창일 때였다. 물레성형을 버리고 너도나도 고화도 유약과 고온번조를 이용한 요변(窯變)효과, 전통과 현대성 같은 무거운 표현과 주제를 내세웠다. 전시대를 버리고 설치나 거대한 외부 조형물 제작에 열을 올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시류와 달리 고명도/고채도 저화도 유약과 아이코닉하고 유쾌 발랄한 표현을 추구하며 차별화했다.
기성 공예 표현의 무게와 허세와 차별화하려했던 작가의 초기작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개인주의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아 정체성을 풍자하거나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상세계 속에서 인간이 내몰리는 자아 상실과 인격혼란 등 시의적 문제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여러 페르소나들이 더해지며 사회 현상과 현대인의 욕망을 풍자하였다. 전시를 거듭하며 들고 사라진 여러 도상들-TV, 브라탑, 하이힐, 립스틱, 생선뼈, 거울, 핸드백, 전화기, 수학 기호 등은 작가가 일상사물 혹은 대중 이미지에 빗댄 자신의 모습이다.
이번 아트비트 갤러리와 갤러리 제이콥에서 연 <Jam Play>전을 위시로, 박경주의 근작에서 여러 도상의 기표와 기의 관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환유(換喩, metonymy)만이 남았다. 이 공허한 기표들은 표면성, 우연성, 인접성, 의미의 공백, 불확정성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수사학의 특징을 공유한다. 사물의 기표는 친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고 새로운 사물과 만날 때 새로운 기의가 발생한다. 각 도상들은 본래 고정된 기의에서 벗어나 재정립된 작가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은유나 상징체계로 코드화된 것들이다. 따라서 박경주의 작업을 몇몇 여성성과 관련된 기표들을 단초로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슈 등의 메시지로 읽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번 <Jam Play>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도자의 비중이다. 전작까지 작가의 아이디어, 사고의 중심이자 작업 방식은 도자가 중심이자 출발점이었다. 다른 매체, 재료는 보조 혹은 확장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도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도자는 작가의 다른 오브제 작업들을 이해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매체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도자는 주체 중심이 아니라 모든 재료, 매체와 동등한 ‘즉흥 연주(Jam)’의 일원이다. 그간 작가의 환상세계가 진화와 변이를 거듭할 때마다 새롭게 결합하고 통합되며 형성된 작가의 환유체계가 이번 <Jam Play>전에 이르러 주체와 타자로 위계화된 수직적 사유를 완전히 벗어나 여러 개체들의 집합과 상호 관계가 수평적 구조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러한 표현의 수평적 구조를 보며 박경주의 작가 정체성을 더 이상 도예 혹은 공예라는 장르로만 묶어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이번 전시의 또다른 특징은 작가의 ‘쾌’가 타인과 함께 하는 ‘쾌(快)’로 진화하는 중이라는 점이다. 작가가 작업 중 느꼈을 재미 혹은 흥미는 작가의 주관적이고 즉흥적인 신체 감각과 취향 판단에 기인한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물컹한 진흙 혹은 모태의 보드라운 젖가슴을 주무르며 느끼는, 아니면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릴 때 느끼는 것과 유사한 본능적 카타르시스다. 이 전시에서 재미와 흥미는 작가의 것이지만, 전시에 온 관객의 능동적 놀이 참여를 거쳐 전유되고 증폭된다. 오랫동안 서구 전통철학은 인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 시각을 우선하고 촉각을 비롯한 공감각을 배제하려했다. 하지만 공감각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작가가 제작과정에서 생성하고 창조한 힘을 온전히 느끼고 향유하는 관객의 미술 감상을 극대화할 방법이 없다.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재미와 흥미는 작가의 것을 일방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고 수용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것’으로 전유하고 서로 공유할 때 배가되는 경향을 보인다. 후일 작가의 작업이 관람객의 개입이나 참여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참여미술이나 관계미학으로 확장될 여지가 다분한 이유다.
 
박경주의 ‘혼성’은 단순히 이질적인 것들을 섞고 묶은 행위가 아니라 시각만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 대상의 실존을 자신의 오감으로 증명하고 드러내기기 위한 초감각적 조형 행위다. 그렇다고 작가의 수평적 매체 혼성과 ‘쾌’의 공유를 근대의 시각중심주의의 해체 혹은 여성 주체성을 세우거나 남성 위주의 주체 권좌를 무너트리는 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작품의 형태나 질감은 작가의 젠더-여성에서 근간한 것이다. 또한 부드러운 비정형의 형태, 시각성보다 매력적인 촉각성의 추구, 키덜트 도상들과 밝은 색채의 사용 등은 분명 남성의 시각이나 감성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자기 관찰과 취향에 근거한 ‘나르시시즘의 세계’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무거운 이념이나 주장보다 자신만이 발휘 가능한 감각과 즉흥성을 거침없이 발휘하며 언제나 ‘재미있는 작업’, ‘즐거운 작업’을 늘 지향해왔다. 또한 시각보다는 공감각성을 추구하고 작가의 권위나 원본성(Originality)보다 작가가 재료를 수집하고 재조합하며 느낀 자유로움과 재미, 즐거움을 우선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네온아트’가 이를 대변한다. 작가는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네온아트의 인터렉티브 요소를 통해 관람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그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려고 한다. 네온 특유의 빛과 발광 소리는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기존 도자나 발견된 오브제 조합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 경험을 만든다. 기존 매체와는 다른 새로운 사고의 놀이체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근년 작가가 순수미술에서 파생시켜 제작하는 의자, 가방, 페브릭류, 브로치 등 다양한 아트상품은 맥락과 의도를 공유한다.
초기 작가의 소재와 매체 확장과 혼성은 특정 매체(도예)에 묶이지 않으려는 조형 의지이자 기존 예술/공예 표현과 관습에 대한 반항, 도전의 의미가 컸다. 그러나 이제 작가의 재료와 매체의 ‘혼성’은 조형 형식이라기보다 스스로 무거움을 덜고 유쾌하고 즐거운 삶과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의 정체성이자 삶의 태도에 가깝다. 그녀가 ‘수학’이라고 지칭하는 기호들을 비롯해 여러 도상들이 드로잉과 오브제 표면에 규칙과 순서도 없이-마치 사물이 무중력 공간에서 떠다니듯- 부유하고 혼재하는 이미지는 박경주의 작업의 특색인 환유와 탈위계화, 쾌의 공유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절이다. 사람 간 거리가 멀수록 얼굴 보고 손을 잡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즐거움, 함께 할 수 있는 동참의 즐거움이 아쉽다. 현실이 암울하고 세상이 이해되지 않을수록, 예술가들의 날선 시선이나 비판만큼이나 필요한 것이 예술의 즐거움이다. 박경주의 <Jam Play>전은 작가의 상상과 행위에서 비롯된 재미난 것, 흥미로운 것, 생경한 것들을 한데 풀어놓고 관객과 함께 원초적 쾌를 느끼고 증폭시키는 우리들의 유쾌한 놀이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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